세계는 지금
강소부국, 복지강국 핀란드
위기의 장애인고용
글. 이정주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센터장
핀란드는 명실상부한 복지국가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틀을 철저히 지켜 가는 국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국민의 일원으로 바라볼 뿐 결코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보편적 인권 중심의 복지 제도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
오랜 항쟁으로 주권을 얻어낸 핀란드
-
-
핀족의 땅, 핀란드(Finland). 정식 명칭은 핀란드 공화국(Republic of Finland). 노키아, 모바일 게임(앵그리버드, 클래시 오브 클랜), 무민, 자일리톨 그리고 무엇보다 최고의 복지국가(Welfare States)로 유명하다. 또한 국가경쟁력지수(Global Competitiveness Index), 인적자본지수(Human Capital Index), 언론자유지수(Press Freedom Index), 국가행복지수(Global Happiness)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인당 GDP는 5만6,000불, 세계 16위. 핀란드를 우리 시대 진정한 선진국이라 부르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핀란드가 세계지도에 이름을 올린 건 1917년, 놀랍게도 이제 겨우 백 년을 조금 넘겼다.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는 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천 년으로, 불리한 지정학적 요인이 컸다. 서쪽에는 바이킹의 원조 스웨덴, 동쪽에는 영원한 강국 러시아가 있어 두 나라 사이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핀란드. 스웨덴은 654년간(1155~1809) 핀란드를 지배했고, 러시아는 1809년부터 핀란드 통치를 이어 받았다. 그나마 존경받는 러시아 짜르(Tsar) 알렉산드르 2세가 있었다지만 식민지는 식민지일 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스웨덴인이 아니다. 우리는 러시아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핀란드인이고 싶다.” 이 절망 어린 소망은 우리나라의 아리랑 같은 핀란드 시(핀란드 국민 시인 아르비드손(Adolf Ivar Arwidsson)의 시)의 한 구절이다. 이토록 간절한 염원은 볼세비키 혁명(1917)으로 이뤄졌다. 혁명으로 약해진 제정 러시아의 혼란한 틈을 타 핀란드는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공산주의로 변모한 러시아, 아니 소련은 핀란드를 다시 침공한다. 핀란드는 결사적으로 항쟁했다. 5년간의 핀소 전쟁(겨울전쟁·계속전쟁, 1939~1944년)은 소련의 승리로 끝났다. 소련은 승리의 대가로 핀란드 영토 15%를 가져가며, 핀란드를 하나의 독립된 주권 국가로 인정했다. 핀란드로서는 패배만은 아니었다. 소련의 위성국가로 편입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크나큰 성과였다. 이때부터 핀란드는 본격적으로 경제발전과 사회변혁에 박차를 가한다. -
2018~2020년
OECD 국가 행복지수 순위
-
-
20세기 최고의 강소국으로 도약
-
스웨덴과 러시아 천 년 지배와 소련 침공의 위기를 벗어난 핀란드의 부국 일념은 눈부셨다. 국토 80%에 달하는 침엽수를 가공한 목재산업, 펄프 제지업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구 500만 명 정도의 적은 인구가 우리나라 3.3배의 국토에 흩어져 살고 있던 핀란드는 지형적 이점을 살려 무선통신 장비와 핸드폰 산업에서 세계 제일로 발군한다. 이렇게 펄프 제지업에서 전격적으로 무선통신업으로 뛰어든 기업이 우리가 잘 아는 노키아(Nokia)이다. 최고의 인적자원 개발 국가답게 21세기 들어서서는 게임산업을 압도하고 있다. 누구나 들어 봄직한 ‘앵그리버드’와 ‘클래시 오브 클랜’은 전 세계인의 오락이 되었다. 노키아, 모바일 게임 제작사 로비오 엔터테인먼트(Rovio entertainment), 엘리베이터 업체 코네(KONE) 등 세계적인 기업은 단기간에 핀란드에 막대한 부를 모아 주었고, 핀란드는 벼락같은 부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고단했던 핀족 역사의 반면교사는 오직 강력한 복지국가체제(Welfare States Regime)를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했다.
-
높은 장애 인권 의식과 장애출현율의 불편한 진실
-
-
그렇게 이뤄 온 핀란드 복지국가의 특징은 모든 국민이 함께 잘사는 평등성에서 출발한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느 누구도 밖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틀을 철저히 지켜 가는 국가가 핀란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따위는 없다. 국민의 일원일 뿐이지 장애인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것이고, ‘장애인(PWD, Persons/People with Disability라는 뜻으로 장애의 보편성을 의미한다)’은 있어도 ‘장애인(The disabled, handicap)’은 없다는 강한 인권 중심의 복지 관점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증 발달장애인 고용정책은 그간의 보편적 관점에 입각한 제도가 쉽사리 먹혀들어 가지 않아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특단의 할당 의무고용제(Quota system) 없이도 복지국가 정부의 지도하에 기업의 장애인고용은 비교적 잘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그 핵심에는 인지적 장애가 있는 지적, 발달장애인의 급속한 증가 추세가 있다. 취업 적령기 장애인의 대부분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점은 핀란드뿐 아니라 현대 선진 국가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모든 국가의 당면한 장애인고용 정책의 위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핀란드는 장애인고용 통계를 국가적으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고용의 추세를 쉽게 파악하기도 어렵고, 구체적인 통계가 없다 보니 수요에 맞는 정책적 대안을 당장 내놓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의무고용제라는 강력한 압박 수단도 없다. 위기를 타개할 정책 마련에 심각한 한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핀란드 고용청이 나름대로 국가 일반적 고용통계를 통해 해고와 실업 상황을 추정해 보니 주로 지적발달 중증장애인에게 해고가 집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OECD 국가별 장애인 출현율
생산연령(16~64세) 장애인 중 20%만이 유급 근로 중인 것으로 파악했다. 생산연령인 16~64세 중 장애인은 대략 18만 명인데, 이 중 핀란드 고용청으로부터 보조를 받거나 유급으로 일하는 장애인은 18만 명 중 20%인 3만6,000명 정도로 나타났다. 특히 지적발달장애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4만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 중 2만5,000명이 생산인구로 추산되지만, 실제 유급 근로자는 400~500명뿐이다. 구직을 희망하는 발달장애인은 3,000명 정도로 집계되는데 실제 고용은 매우 적음을 알 수 있다. 핀란드 정부도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포함해 국민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고용시장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중증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
-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중증장애인 고용문제
-
그런 가운데 꾸준히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 지원고용(Supprted employment) 제도였다. 기존의 신체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 서비스 영역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고용 서비스를 포함시켜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원고용을 통한 중증장애인 고용은 기존 보호고용(직업재활시설) 현장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 수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지 않다. 실제로 기대했던 기업의 경쟁 고용시장에서는 발달장애인 지원고용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발달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해고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정부로서는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 사이 지원고용 제도에 대한 의문과 비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정부는 답답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차라리 우리나라와 같은 의무고용제 국가라면 경기침체기라도 강력한 법률적 강제 사항을 동원하여 압박을 줄 수 있지만 그러지도 못한 핀란드는 곤혹스럽기만 하다.
이와 관련하여 핀란드의 장애인고용 전문가 안띠 씨는 “현재 핀란드의 장애인고용 문제는 ‘작업 능력에 심각한 제한을 지닌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들은 대부분 발달장애인과 복합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에 해당되며, 이들의 빈곤 등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파악한다. 아무리 핀란드의 복지가 잘 되어 있어 교육 시스템이나 고용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더라도, 중증장애인 고용까지 성공적으로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이들이 고용현장에서 우선 낙오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고용은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경제적인 관점 혹은 고용정책의 하나로만 볼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천 년 고난의 역사를 겪고 금세기 최고의 경제부국, 복지강국으로 올라선 핀란드 역시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의 고용문제에 있어서는 뜻밖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달장애인 고용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선진국이니 선험국이니 할 것 없이 아직은 풀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동안 신체적 장애와 경증 장애인고용을 위해서는 의무고용제 또는 차별금지제도 등으로 풀어 왔지만 인지능력의 한계가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의 고용은 난공불락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앞서 핀란드 안띠 씨의 인터뷰 내용처럼 발달장애인 등 중증장애인 고용을 위해서는 복지적 요소와 고용시장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새로운 장애인고용 정책과 서비스 개발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래도 고용과 복지 통합적 지원서비스, 즉 ‘중증장애인 일자리 돌봄’의 새로운 어젠다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고민해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