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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정덕현 칼럼니스트
선천적으로 무릎 아래의 뼈가 없이 태어났지만, 육상 선수이자 모델,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사람’이라 불리는 에이미 멀린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장애라 부르며 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을 뒤집는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에이미 멀린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난 너희 부모님에게 너의 예후에 대해 설명해야 했지. 자네가 절대 걸을 수 없을 거고, 다른 아이들만큼 운동능력도 갖지 못할 테고,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살지 못할 거라고
말이야. 근데 넌 날 완전히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어.” 테드에 출연한 에이미 멀린스는 우연히 어느 마트에서 만나게 된 킨 박사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인용해 들려줬다. 킨 박사는
에이미 멀린스를 받아냈던 의사였다. 그가 그런 절망적인 이야기를 부모에게 들려줬던 건, 에이미 멀린스의 다리 때문이었다. 선천적으로 종아리뼈가 없이 태어난 아기. 의사는 의학적인
판단하에 그 예후를 객관적으로 설명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에이미 멀린스가 그 후에 해왔던 일련의 성장과정들은 그를 완전한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한 살 때 두 다리의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의족을 선택했지만 에이미 멀린스는 힘겨운 재활훈련을 이겨내고 친구들과 수영, 자전거, 축구 등 다양한 운동을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운동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그녀는 결국 미국대학스포츠연맹(NCAA)이 주최한 비장애인 육상대회에 출전했고 1996년 애틀랜타 패럴림픽 육상 부문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라이프’지는 그녀를 소개했고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1999년 영국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아름다운 의족을 만들어 그녀로 하여금 패션쇼 런웨이를 걷게
했다. 그 후 각종 패션지의 표지를 장식한 에이미 멀린스는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치타의 뒷다리를 모델로 한 탄소 섬유
보철물은 큰 화제가 되어 영화 ‘킹스맨’에 등장하는 날카로운 의족을 한 가젤이라는 캐릭터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녀는 테드에서 자신 때문에 거짓말쟁이가 됐다고 말한 킨 박사가 그 후에 자신에 대한 많은 기록들을 모아 ‘미지의 인자 - 인간 의지의 잠재력’이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 강의는 “인간의 의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고 이것은 의학적인 예후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라는 내용으로 에이미 멀린스를 만난 후 그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설명한다. 장애란 사회가 만든 편견일 뿐이라는 걸 에이미 멀린스는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냈고, 이 이야기는 세상의 장애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에이미 멀린스의 인생을 바꾼 한 마디
에이미 멀린스의 인생을 바꾼 한 마디가 있었다. 그녀는 다섯 살 때 매일 같이 재활운동을 했다. 병원에서 지내는 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두꺼운 고무밴드를 차고 다리
근육을 키우는 물리치료를 하는 일은 너무나 힘겹고 싫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담당 의사인 피주틸로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에이미, 넌 정말 강하고
힘이 넘치는 소녀야. 내 생각에 넌 이 밴드 하나쯤은 끊을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이걸 끓어버리면 내가 너한테 100달러를 주마.”
그 말 한마디는 에이미 멀린스가 고역으로만 느끼던 재활운동을 기대하는 시간으로 바꿔 주었다.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던 생각을 바꿔주었고, 대신 자신 안에
숨겨진 잠재력을 꺼냄으로써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에이미 멀린스는 장애란 스스로를 위축시켜 만들어내는 한계라며,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들이 그것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전이 ‘장애’를 ‘불구의’, ‘약한’, ‘쓸모없는’, ‘망가진’ ‘막막한’, ‘부상을 입은’, ‘짓이겨진’
‘훼손된’ 등등의 부정적인 의미로만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진짜 장애라고 꼬집었다. 이런 것들이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역경은 우리가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라고 통찰한다.
진짜 장애는 억눌린 마음이다
그녀는 나아가 “인류가 만든 가장 큰 역경은 ‘정상’이라는 개념”이라며 “보통이나 전형적인 것은 있어도 정상적인 것은 없다”라고 선언한다. 정상이라는 통념적 기준은 그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소외와 차별을 만들고, 동시에 우리의 무한한 잠재력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미 멀린스는 찰스 다윈이 했던 말을 인용해 “인류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적응력”이라고 설명한다. “가장 강한 종이 생존하는 것도 아니고 가장 똑똑한 종이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았다”라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인간의 잠재력을 깨워낸 것이라며, 에이미 멀린스는 자신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이라는 개념에
빠져 있었다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던 운동능력이나 연기력 등의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자신의 무릎 아래 뼈가 없다는 역경에 맞춰 변화하려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육상 선수로, 모델로, 영화배우로도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에이미 멀린스는 “진짜 장애는 억눌린 마음”이라고 말한다. 즉 정상이라는 개념 아래에 장애를 비장애와 나누고 차별적인 시선을 갖는 사회가 진짜 장애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무릎 아래가 없다는 건 장애가 아니라 그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바로 그 다름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다. 세상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