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장봉주 박사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글. 임채홍
사진. 신현균
-
아직 무더위가 미처 가시지 않은 9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장봉주 박사를 만났다. 시종일관 웃는 얼굴과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다가도 업무 이야기만 나오면 열정적으로 변하는 얼굴엔 ‘프로 일잘러’의 면모가 보였다.
-
0:00 /
<오디오북 듣기>
-
날로 복잡해져가는 도시 속에서 재해의 발생 요인을 제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도시재해 예방. 우리의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낯설기만 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만의 사명감과 열정으로 도시재해 예방 연구에 매진하는 장봉주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
현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장봉주 박사. 이름만 들어선 어떤 일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본다. “기후변화에 따른 다양한 재해를 예방하고 안전한 생활환경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요즘엔 기상, 도시 및 교통 환경, 홍수, 침수 등 다양한 재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에요.”
최근 재난 문자가 쏟아지는 경험을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특히 기상 예보와 관련된 경보는 조금만 틀려도 사람들이 툴툴대며 “믿을 수가 없다”라고 불평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장봉주 박사가 환경 변화와 기상 정보를 측정하는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 변화와 기상 정보를 다양한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정확히 관측하고 분석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눈앞에 비가 오고 있으면 이 비가 많고 적은지는 대충 말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비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면, 홍수나 침수 같은 위험을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알릴 수 있는 거죠.”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한순간의 실수로 불평을 받는 불편한 일. 장봉주 박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는 걸까. 돌아온 그의 답은 비장하면서도 소박했다.
“제가 개발한 기술이 오직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며 더 진지하게 일하게 됐어요.”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자칫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즐기면서 재밌게 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연구라는 게 시간을 정해놓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일을 즐기지 못하면 계속하기 어려운 직업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늘 ‘취미활동하는 데 돈도 주네’하면서 일하는 편이에요.” -
-
사람들에게 와닿는 기술을 위해
-
-
그는 대학교 졸업 후, 몇몇 중소기업에서 기술 개발을 하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 이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서 1년간 기상레이더에 대해 배우며 기상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02년 태풍 매미로 인해 제 시골집이 1미터 이상 물에 침수됐어요. 이런 재난을 실제로 겪어보니, 실질적으로 현장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에게 와닿는 기술을 연구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는 도시재해가 단순히 기상이변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도시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인프라가 극한의 기상 현상이나 작은 사고들로 인해 재해·재난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도시가 만약 배수가 잘 되는 원지대에 있고, 지하차도나 지하 주차장이라는 인프라가 없었다면 큰 비가 오더라도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거란 얘기죠.”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해온 그의 열정은 2023년 7월, 여러 뉴스채널에 도시침수 감시기술이 소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 기술은 복잡한 도시환경에서 순수한 물과 그 이외의 잡음(사람, 자동차, 동물, 기타 장애물 등)을 정확히 분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상시적으로 수위와 유속을 감지하고, 스스로 위험도를 판단해 사람들이 미리 대피시킬 수 있도록 돕는 거죠.” -
-
-
비결은 ‘마인드 컨트롤’
-
-
누구보다 노력하며 살아왔을 그는 항상 겸손을 잃지 않았다.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는 자신하기 어려워요. 왜냐면 남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봉주 박사는 어렸을 적 열병을 앓고 난 뒤, 뇌성마비 2급 판정을 받았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반 학교를 다니며 비장애인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허물없이 지냈지만 어쩔 수 없는 ‘다름’으로 인해 마음고생도 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해온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20대에는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인적이 드문 시골에 가서 생각도 정리하고 나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게 저만의 힐링이자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었어요. 이때 저는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만 생각해요. 미래는 제가 걱정한다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연구직 특성상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해야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자리에 임할 때마다 스스로 위축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특히 중요한 사업이나 과제를 평가받을 때 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언어장애 때문에,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아 불이익을 받을 때도 많았어요. 사실 당연한 거죠. 배려는 아름답고 장려돼야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선 역차별이고 편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 느끼는 좌절감 역시 마인드 컨트롤의 대상이 되곤 했어요.” -
“오히려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
동료들과 함께
-
장봉주 박사의 동료 사랑은 인터뷰 중 계속됐다. 그는 연구생활을 하며 가장 기쁜 순간으로 ‘동료들과 함께 했을 때’를 꼽았다. “연구원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며 많은 동료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했어요. 함께 밤새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때론 싸우기도 했어요. 이렇게 같이 고생하면서 바라던 결과를 얻었을 때, 혼자라면 못 느꼈을 희열을 얻어요.”
하지만 이런 동료들과도 갈등은 있었다고 한다. “동료 박사님들이 모두 똑똑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보니 처음엔 의견 충돌도 많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같이 연구한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서로 배려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 지금은 이런 멋진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
-
“오히려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장봉주 박사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막연히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자는 말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싶었다고.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았을 때, 그것에 너무 몰두하지 않았으면 해요. 또, ‘장애를 극복해야지’ 하면서 자신을 더 몰아붙이지도 마세요. 장애가 있으면 비장애인들에 비해 신체의 노화나 외부요인에 대한 피해가 더 누적될 수 있어요. 그러니 꼭 여유를 가지고 하루에 한 번씩 맑은 공기, 푸른 자연을 보며 건강을 지켜야 해요. 그게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이에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며 진심을 전한 장봉주 박사.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즐기며 살고 있는 그의 하루는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