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발견

장애인 자녀를
키운다는 것

글. 정진옥
발달장애인성교육상담센터:되어감 대표

장애인 자녀를 직접 키우는 부모는 아니지만, 지난 30여 년간 장애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장애인복지현장에서 일하며 만나온 수많은 부모들과 저의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 그야말로, 엄청난 도전

  •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생애 주기마다 엄청난 도전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한 시기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다며, 40대 발달장애 자녀를 둔 70대의 한 어머니가 자녀의 이른 노화를 걱정하시며 얘기한 적이 있다. 특히 성교육과 성상담 상황에서 만난 많은 부모들은 커다란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답답함과 막막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녀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되자마자 부모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수많은 치료기관을 찾아 나서게 된다. 어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일을 놓고 전적으로 자녀를 돌보는데 전념하기도 한다. 조기교육실이나 통합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낼 때가 되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 받거나 또는 다른 아이들에게 내 아이가 피해를 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마음을 졸인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한시름 놓는 게 아닌 걱정은 더 커진다. 내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수업은 따라갈 수 있을지,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등 걱정과 심적 고통은 자녀가 중학교 들어갈 때쯤 절정에 달한다. 어떤 어머님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연락만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얘기한다. 이제까지 말 잘 듣던 아이가 갑자기 물건을 부수거나 자해나 타해를 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아이가 점점 더 나빠져 간다는 생각에 밤잠도 못 이루기도 한다. 아이가 크면서 겪는 당연한 사춘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장애 자녀를 둔 부모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도 한다.
    자녀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해도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물론 과거와 달리 장애인일자리와 중증장애인을 위한 통합돌봄 같은 서비스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

  • 온전히,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 “아이는 자라면서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힘도 세지는데 저희는 점점 힘이 없어지니 자꾸 충돌이 생기더라고요. 부모도, 아이도 살기 위해선 아이를 독립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자폐나 도전적 행동 때문에 혼자 잘살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임대주택에서 혼자 잘 살고 있어요. 아이가 주말에만 집에 오는 생활이 1년 되어가는데 아이도 저희도 다 만족해요.”
    30대 초반의 자폐 아들을 둔 한 어머님은 장애 자녀의 부모님들을 만나면 자녀를 독립시키라고 권유한다. 그래야 자녀도 부모도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자녀가 능력이 있어서 자립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자립생활을 하면서 능력이 커졌다며,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훨씬 더 능력이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고. 곁에 있을 때 안 보이던 것들이 떨어져 있으니 더 잘 보인다며,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의 장점을 점점 더 알아갈 수 있어 기쁘다고도 말한다.
    성인 장애인과 부모의 삶이 분리되지 않으면 그 부담은 점점 커지게 된다. 자녀와 부모 자신을 위해서라도, 성인 장애인을 위한 주거지원 제도를 활용하고 장애 자녀를 잘 이해하고 지원해 주는 장애인활동지원사를 찾아야 한다.
    자폐 자녀가 20대 후반에 미술작가가 되자 감동의 눈물을 흘린 부모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자녀를 통해 어떤 기대나 희망을 가지기 어려웠다고. 그럼에도 자녀가 재능을 발견하고 미술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또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많은 부모들이 현실에 직면한 수많은 일들을 해결하며 살기 바쁘기 때문에 자녀의 먼 미래를 바라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장애 자녀도 남들처럼 미래를 가진 사람이다.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보기 어렵다면, 그들과 함께 하는 우리(장애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가 먼저 그들의 미래를 그리면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그들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들을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장애 자녀를 키우는 일은 부모 혼자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지 못하기에, 자녀도 성인이 되면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야 성장할 수 있다.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는 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장애인에게도 필수적인 요소다. 한 명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장애인 자녀에게도 꼭 맞다. 장애인과 부모에게 마을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인적 공간으로서 교사, 기관 종사자, 외부 전문가, 활동지원사, 이웃 등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 함께 성장해 가는 시간

  • 장애 자녀를 키운다는 건,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쉽지 않지만 자신이 보다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시간이었다고 많은 부모들이 고백처럼 얘기한다. 길에 놓인 커다란 돌덩이를 만났을 때 대처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더 멀리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는 디딤돌로 삼는 방법도 있다. 함께하는 여정이 때로는 힘들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희망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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