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공감
경험을 사고파는
인터넷 경험 상점
‘브이로그’
글. 김가현
시청자가 유료 방송 케이블 대신 인터넷 플랫폼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동하는 현상 ‘코드커팅(Cord-Cutting)’이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플랫폼에서 TV 방송을 대체할 영상 콘텐츠가 쏟아진다. 특히 유튜브를 중심으로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매력적인 콘텐츠, ‘브이로그’의 종류와 인기 비결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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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먹해보는 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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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친구의 일기장을 펼치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처럼 그 안에 빨려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나와는 다른 가족 구성원, 먹어본 적 없는 음식, 경험해보지 않은 사건들 등 그 시절 친구의 일기장은 ‘재미 보증 수표’나 다름없었다. 우린 이때부터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타인의 삶에 무궁무진한 재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현재 사람들은 이 재미를 ‘브이로그’로 맛보고 있다.
브이로그(VLOG)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콘텐츠를 말한다. 이른바 ‘영상 일기’인 셈이다. ‘직장, 다이어트, 데이트, 여행’ 등 일상을 기록할 주제는 다양하기에 브이로그의 종류도 끝이 없다. 최근에는 굳이 일상 얘기가 아니더라도, 동영상으로 기록한 모든 것을 통틀어 브이로그로 규정짓는 추세다.
브이로그의 인기 핵심은 ‘대리 경험’이다. 경험을 사고파는 시대가 도래한 현대에 ‘경험은 돈이 된다’는 공식을 방증이라도 하는 듯 브이로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여행이나 쇼핑 브이로그로 대리 만족을 하고, 다이어트를 할 때는 먹방 브이로그로 괜스레 빈속을 달래기도 한다. 또한, 예비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은 대학생, 직장인 브이로그로 해당 대학교와 직장을 체험해 본다.
기업은 이런 현상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쳤다. 기업의 공식 계정에서 직장인 브이로그를 올려 부서와 직무를 소개하며, 기업을 알리는 전략이다. 사내식당, 자율출근제 등의 모습을 연출해 자연스레 복지혜택을 선보인다. 일반적인 기업 영상에 비해 조회 수가 상당히 높아 브이로그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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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따른 브이로그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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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로그 유행의 시작은 감성 브이로그였다.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SNS 속 유명인 혹은 연예인들의 일상을 그린 영상을 ‘감성 브이로그’라고 부른다. 평소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이들의 생활로 들어가니 더 친근감이 드는 동시에 선망을 자극했다. 대표적으로 소녀시대 태연의 ‘탱구TV’, 배우 한예슬의 ‘한예슬 is’, 배우 신세경의 ‘신세경 sjkuksee’ 등이 있다. 최소 5년 전부터 시작된 이들의 행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이 영향으로 아이돌 판에서는 홍보 겸 소통용으로 잇달아 브이로그를 냈다.
그다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일상 브이로그다. 현대인들의 현실적인 생활 위주로 소박한 삶의 가치를 전한다. 이전에는 정보 전달의 내용이 거의 없었다면 이때부터 ‘자취 생활 팁, 바쁜 직장인 한 끼 해결’ 등 정보를 가미한 브이로그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변형되어 최근에는 극사실주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극사실주의 브이로그는 ‘이혼 브이로그’, ‘퇴사 브이로그’ 등의 주제를 다룬다. 주제가 부정적이지만, 예상외로 내용은 그다지 우울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보 전달이 한몫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사기당했을 때의 대처법’ 등으로 현실에서 실제로 있을 법한 안 좋은 일을 가져와 해결하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저 일상을 공유하며 소통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브이로그가
흙탕물이 되어가고 있다. 양극단이
더 이상 심각해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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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이 부른 대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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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로그는 개인의 일상 그 자체가 아이템이기에 별도의 기획이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나 유튜브를 브이로거(브이로그를 찍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연출·조작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상적인 집과 가족들을 연출하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사, 조회 수를 노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극사실주의 양상이 미성년자 브이로거들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가출 브이로그’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가출 브이로그는 유튜브 내에서 상당수를 이루고 있다. 가출해 경찰에 잡혀가는 등 상당히 아슬아슬한 수위의 영상들이 태반이다. 그저 일상을 공유하며 소통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브이로그가 흙탕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상향을 꿈꾸며 허구로 제작한 브이로그와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극사실주의 브이로그. 양극단이 더 이상 심각해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특히 미성년자에게는 영상 시청의 제한뿐만 아니라, 영상 제작 제한의 고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