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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짜장면 고맙습니다(2022)’
라면 대신 짜장면 사랑은...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실제 장애인 커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짜장면 고맙습니다’에는 극적 장치 대신 진정성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짜장면에는 다른 함의가 아닌 순수한 고마움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의 다음 이야기도 보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영화 한 편 때문에 남녀 사이에 ‘라면’은 성적 동침을 뜻하게 된 바가 있다. 그 영화는 바로 ‘봄날은 간다’다. 이 영화에서 은수(이영애)는 상우(유지태)의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다가 상우에게 “라면 먹을래요?”라고 말한다. 다음 장면은 은수의 집이고, 은수는 라면을 끓이면서 “자고 갈래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 이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는 성적 관계의 제안으로 그려졌다. 영화 ‘짜장면 고맙습니다’에는 남녀 사이에 라면 대신 짜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짜장면은 성관계를 내포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짜장면을 매개로 하는 장애인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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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데이트와 장애로 인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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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으니,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마비로 지체 장애를 지닌 미숙은 당황하게 된다. 급히 미숙이 복지관에 연락을 해보니 다행인지 수리 기사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곧 수리 기사 민규가 도착한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민규가 열심히 컴퓨터를 고치려고 노력하니 미숙이 식사하셨냐고 묻는다. 민규가 ‘아직 점심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미숙은 ‘짜장면을 드실래요?’라고 말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는 봉지라면을 뜯어 여자 주인공이 라면을 끓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직접 만든 것이 아닌 배달된 짜장면을 먹게 된다. 영화 ‘봄날은 간다’와 또 다른 점은 밤이나 저녁이 아니라 벌건 대낮이라는 점이다. 또한, 미숙의 방은 민규에게 노동의 공간이고 그 노동 때문에 짜장면을 같이 하게 된다. 성적 관계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노동의 대가이기도 하고 고마움의 표현이 바로 짜장면이 된다. 요컨대, 여성의 공간에 남성이 들어가는 의미를 성적 관계의 용인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는 두 번째 라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많이 회자가 되지 않았다. 이 장면을 다시 짜장면과 비교해 볼 수 있어 언급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 등장하는 장면은 상우가 라면을 끓이는데 은수가 오늘은 ‘떡라면’이라고 한다. 그리고 김치까지 넣으라고 한다. 처음에 은수는 생라면도 깨물어 먹었는데 이제 떡라면에 김치까지 넣어 먹는다. 이는 개인의 취향, 나아가 욕심이 더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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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짜장면 고맙습니다’에서는 짜장면이 두 번째로 등장할 때도 간짜장이나 삼선짜장이 아니라 그냥 보통 짜장면이었다. 그 둘에게는 오로지 짜장면을 같이 먹는 게 중요할 뿐이다. 이 짜장면 역시 다 고치지 못한 컴퓨터에 매달려준 민규에게 미숙이 고마움의 뜻으로 대접한 것이다. 더구나 컴퓨터 수리를 완료했기 때문에 더 좋은 음식을 줄 수도 있는데 여전히 짜장면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짜장면을 대하는 민규의 태도이다. 그 짜장면도 능히 맛있게 먹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두 사람이 짜장면만 먹는 것은 아니다. 미숙은 민규에게 두 번이나 짜장면을 대접했으니 다음에 맛있는 거 사달라고 말한다. 민규는 주변 장애인 여성을 통해 이것이 데이트의 시작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데이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성적 관계를 맺어 버리는 영화 ‘봄날은 간다’와 다른 전개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학로에서 첫 데이트를 하는 그들은 삼겹살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의 삼겹살 데이트는 가로막힌다. 주인이 그들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우 심한 모욕을 당하고 만다. ‘장애인 좌석은 없으니 나가라, 집에만 있어라’라는 말에 격분한 미숙은 주인과 심하게 말다툼을 하게 된다. 저렇게 심하게 말하는 식당 주인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원색적인 표현이 두 사람에게 작렬하다시피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는 두 사람이 연애하는 데 사회적 장애조차 없다. 다만, 그들의 연애가 더는 나가지 못하는 것은 한 사람의 욕망이 변했기 때문이다.
영화 ‘짜장면 고맙습니다’는 아마도 삼겹살집 주인을 통해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장애인의 처지를 표현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애인의 욕망이나 행위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편견과 차별의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만 다루지는 않는다. 그들이 초밥집에 갔을 때는 다른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최대한 편안하게 마음을 풀어주면서 원하는 식사 메뉴를 제공하려고 노력을 다한다. 심지어 비장애인보다 더 먼저 자리를 양보받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이의 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이들은 삼겹살집과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데이트는 기분 좋게 끝이 난다. 물론 두 사람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준 곳은 삼겹살 식당이었다. 왜냐하면,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미숙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민규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이런 데이트 끝에 마침내 커플링을 맞추고 진정한 연인이 된데 이어서 결혼식에 골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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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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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의 결과를 보면, 라면이 만든 인연은 헤어졌고, 짜장면이 만든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결혼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라 인연의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소망스러울 수 있고, 특히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비장애인의 라면보다 장애인의 짜장면 사랑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 된다.
물론 영화 ‘짜장면 고맙습니다’는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보인다. 삼겹살집 주인과 미숙의 다툼 외에는 갈등 상황이 나타나지 않는다. 갈등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어야 극적 긴장감과 함께 흥미를 유발하는데 이런 점이 없다. 아울러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사랑이면 주변의 반대가 있을 텐데 그렇지 않다. 실제 있었던 장애인 커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진정성이 있을 뿐이다. 극적 재미를 위해서 인위적인 장치들을 많이 설정하기보다는 본질에 좀 더 초점을 뒀다. 허구의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를 영화 ‘짜장면 고맙습니다’가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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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을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같이 키워가려는 마음과 행동이 있다면 그뿐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미숙의 행동을 통해서 장애 여성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거리낌이 없다는 점에서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민규를 포용하는 모습도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혼 이후 부부 생활에서 이러한 점들이 어떻게 그려질지 그 후속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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