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인플루언서
이지현 EBS PD
“현실 속 캐릭터로
이상향을 보여주고 싶어요”
글. 김엘진
사진. 황지현
EBS <딩동댕 유치원>은 지난해 12월 ‘제25회 한국장애인인권상’ 시상식에서 장애아동 참여 환경 조성과 장애 인식개선에 이바지했다는 인정을 받아 인권실천부문 상을 받았다. <딩동댕 유치원>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를 꿈꾼다는 이지현 PD를 만났다.
Q. <장애인과 일터> 독자를 위해 이지현 피디님과 <딩동댕 유치원>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딩동댕 유치원(이하 딩동댕)은 1982년 3월부터 방송된 국내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3년 전부터 딩동댕 유치원의 연출을 맡게 되었어요. 입사 후 개편을 준비했는데, 가장 크게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딩동댕에는 자폐성 장애아 ‘별이’, 다문화 혼혈아 ‘마리’, 지체장애아 ‘하늘이’, 하늘이의 쌍둥이 여동생 ‘하리’, 조손 가정의 ‘조아’, 유기견 출신의 ‘댕구’, 그리고 원장 선생님 ‘딩동샘’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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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실적인 캐릭터들은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영향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세서미 스트리트>(이하 세서미)를 정말로 좋아해요. 세서미는 1969년 미국에서 처음 방송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세서미의 워크숍 부사장 ‘셰리 웨스턴’이 한 인터뷰에서 “세서미는 환상이나 동화가 아닌 항상 현실이었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 다른 콘텐츠와의 차별점이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이러한 세서미의 철학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이 철학이 딩동댕을 만드는 기준이기도 하죠. 딩동댕의 캐릭터는 물론 전래동화나 다른 나라의 동화 등 이야기를 다룰 때도 현실에 기반한 리뉴얼 작업을 거치고 있습니다.
Q. 늦었지만 지난해 한국 장애인 인권상 인권 실천 부문 수상 축하드립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권리를 충분히 지켜주고 있느냐 하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장애아동의 권리는 더 그렇죠. 우선 저출생으로 아이들이 소수자가 되어 가고 있고, 미디어의 유아 프로그램도 적고, 상업화된 어린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유해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공영방송사가 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도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이 사실이에요.
또 하나, 요즘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의 권리를 어른들이 지켜주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는 물론 동물, 사물, 자연환경 등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도록요.
Q. 두 아이의 엄마시죠. 엄마라는 점이 딩동댕을 제작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아이가 생긴 후에는 뉴스를 봐도 아동학대나 장애아동, 교육 문제 등이 와 닿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고민하게 되고요.
그리고 제 아이는 자폐아 별이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어요. 아이 반에 자폐아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발달장애 친구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며 별이 캐릭터를 만들었죠.
딩동댕에는 자폐성 장애아 ‘별이’,
다문화 혼혈아 ‘마리’, 지체장애아 ‘하늘이’, 하늘이의 쌍둥이 여동생 ‘하리’,
조손 가정의 ‘조아’, 유기견 출신의 ‘댕구’, 그리고
원장 선생님 ‘딩동샘’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Q. 막상 별이가 방송에 등장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022년 1월부터 개편을 준비했고, 5월에 개편 후 첫 방송이 나갔는데, 별이는 2023년 8월에 등장했으니까 굉장히 오랜 시간 준비를 한 거죠. 별이에 대해서는 다른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공부가 필요했어요. 작가님도 어려워하셨고, 심지어 인형 연기나 성우 연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부적인 설득의 과정도 필요했죠. 발달장애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서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등에 대한 합의가 정확하게 이뤄져야 했어요. 당시 작가와 PD가 10명이었는데, 모든 사람이 별이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했어요. 정말 많은 책을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발달장애 전문 유치원 원장님의 외부 자문을 받으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Q. 하늘이 캐릭터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지체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남자아이인데, 아무래도 아이들의 눈에 명확하게 인식되는 것 중 하나가 ‘휠체어’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 설정하게 됐습니다. 하늘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똘똘한 친구로 설정했기에 처음에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늘이와 함께 하면서 사실은 제작진조차 지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가령 배를 탄다거나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에서 하늘이가 자꾸 주변인이 되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을 지켜본다거나 그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거나요.
어느 날 게시판에 지체 장애아 어머니가 쓴 글을 보게 됐어요. ‘우리 아이도 휠체어에서 내릴 수 있는데 왜 하늘이는 휠체어에만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는데, 그제야 저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저부터 휠체어와 하늘이를 한 몸으로 인지했다는 것을요. 지금은 하늘이도 많은 장면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Q. 현실 반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들면 만들수록 더 많이 고민하게 돼요. ‘우리가 얼마만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걸까?’라고요. 세서미에도 줄리아라는 자폐 캐릭터가 나오는데요, 줄리아 인형 연기자분의 딸이 자폐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토마스 기차에 나오는 자폐 캐릭터는 실제 연기자도 자폐아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 경우 현실감이 더 있을 수밖에 없죠.
또, 별이가 너무 호감이 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시청하는 아이들이 거부하지는 않을까 고민되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도 당연하거든요. 장애에 대해서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기에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실제 장애아동의 출연은 어떻게 기획하셨을까요?
하늘이와 별이가 방송을 시작한 뒤 또 다른 장애 유형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제작비 등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2023년 팬데믹이 차츰 해제되며 실제 아이들이 나올 수 있었죠. 딩동댕에는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 장애, 다운증후군 등 다양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나와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함께 미술 활동 등을 하며 시간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현실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인형으로만 구현했던 장애라는 것에 대해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시청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아이들의 반응을 직접 살피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 시청자 게시판을 꼼꼼히 읽고 있어요. 보통 부모님들이 반응을 보여주시니까요. 그중 발달장애 첫째와 비장애 둘째를 키우는 엄마의 사연이 기억나네요. 방송을 보면서 둘째가 첫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꽤 자주 들었어요. 형제자매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는 소감이요. 그럴 때 정말 뿌듯하고 내가 잘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Q. 지금 딩동댕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자라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고 계실까요?
그러길 꿈꾸는 거죠. 사실 딩동댕의 캐릭터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야기는 또 굉장히 이상향적인 사회의 모습이잖아요. 여러 소수자가 모여 서로를 돕고, 이해하는 그런 세상이니까요. 이따금 현실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선과 악을 명확하게 정리해줘야 하며,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교육이 아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애아동은 물론 소외당하는 아이들을 더 많이 찾아주고, 이 아이들의 권리를 담는 아이템을 꾸준하게 만들고 싶어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더 많이 노출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국내 장애인 복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에 독일의 장애인 복지를 다루는 방송을 보다가 “사람이 제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제도가 사람한테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그 말에 공감합니다. 장애인이든 또 다른 어려움을 가진 사람이든 어떤 필요성이 있다면 국가 차원의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고 봐요. 장애인 보호자의 장애인을 돌보는 노동에 대한 인정도 필요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