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싱가포르, 장애인고용과
복지의 중장기계획

‘EM 2030’

글. 이정주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센터장

21세기 들어서며 아시아의 네 마리 용(Four Asian Dragons)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이 날아오른 용은 단연코 싱가포르이다. <표>와 같이 1인당 GDP의 변화를 보아도 알 수 있다. 2023년 세계은행은 1인당 GNI 세계 1위는 싱가포르라고 발표했다1.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 부국의 반열에 올라선 싱가포르, 그럼에도 장애인 정책은 아직 진화 중이다.

‘Singapore is out’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겨나듯 독립을 당했다2. 그 흔한 동남아의 천연자원은커녕 물 한 모금 나지 않는 척박한 작은 섬, 게다가 남겨진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인도계 이주 노동자, 멀리 중국본토를 떠나 동남아 말레이 끝자락까지 밀려 내려온 중국계 쿨리(Coolie, 부두노동자)였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딛고 싱가포르 성공을 이뤄낸 것은 지도자 리콴유(李光耀, Lee Kuan Yew 1923~2015)다. 그가 밝힌 비결은 ‘사회통합’이었고, 그는 강력한 사회규율을 세워 전 국민을 하나로 묶는 방법을 택했다. ‘질서를 넘어서는 자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통치 철학은 싱가포르 방문기념 셔츠에 인쇄되어 있는 ‘Fine city 싱가포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표> 아시아 네 마리 용의 1인당 GDP 추이 비교

(단위: 달러)

구분 1965년 2015년
(PPP)
2023년
(PPP)
인구 순위
싱가
포르
516 52,890
(85,139)
88,447
(133,822)
592
만 명
5
홍콩 668 42,330
(56,428)
53,602
(75,128)
729
만 명
19
대만 229 22,380
(47,898)
34,432
(76,858)
2,330
만 명
30
한국 105 27,214
(36,601)
34,165
(59,330)
5,178
만 명
31

참고: KOSIS 통계청, 나라경제(2017.7월호), 나무위키 재구성

Fine은 ‘좋고 건강하다’ 와 ‘벌금을 부과하다’는 뜻을 동시에 가진 중의적 단어이다. 그러니까 ‘파인시티! 싱가포르’는 비록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지만 건강한 도시를 의미한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강력한 벌금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태형(Caning, 笞刑)3으로 국민을 다스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렇게 국민을 하나로 묶은 싱가포르는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환경을 분석하여 자국에 맞는 국가전략을 세운다. 오랫동안 지배당한 영국으로부터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무역항의 진가를 확인했고, 일본에게 강력한 권력 통제의 힘을 배웠고, 중국의 유교적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를 용광로(Melting pot)에 녹여 전 세계 유례없는 독특한 정치(인민행동당), 경제(국가계획), 사회(규율) 구조를 완성한다. 그 힘은 오늘날 금융, IT, 항만물류, 관광은 물론 엑손모빌(ExxonMobil), 쉘(Shell) 등 석유화학 정유공장과 저장시설,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원유거래 시장까지, 2, 3차산업을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총아로 우뚝 올라섰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4의 공격적인 투자전략과 놀라운 수익률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사회복지 영역도 철저한 국가전략에 따라 집행된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전 국민 공공임대주택 지원제도’가 그렇고, 강제저축으로 알려진 공공적립금제도5가 그렇다. 국민의 90%가 주거 마련에 불편함이 없고, 강제저축으로 노후보장, 요양보호에 요긴하게 활용되는 사회정책이다.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이룬 국가 차원의 거시적 사회인프라 구축에 비해 개개인의 미시적 욕구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뤄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파인시티 기념 티셔츠

싱가포르의 파인시티 기념 티셔츠


1 GNI(gross national income, 국민 총소득), 싱가포르 1인당 GNI는 10만 2,450 달러(약 1억 3,200만 원)로 세계 1위이다(세계은행). 1인당 GNI는 국민 개개인의 생활 수준을 보여준다.

2 영국은 1963년 영국 자치령이었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합병하고 떠났다. 그러나 이슬람국가 말레이시아는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공산주의 중국 화교를 무척 싫어했다. 그러다 1965년 8월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주를 분리하여 독립시켜버린다.

3 태형은 육체에 가하는 형벌로, 가는 막대로 죄인의 등짝이나 볼기를 때리는 방식의 형벌이다.

4 싱가포르를 부르는 자바어로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5,000억 USD로 약 700조 원 정도의 투자기금을 가지고 있다.

5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는 개인별 저축 계좌를 개설하고 근로자와 고용주는 각자 소득의 일정 비율을 근로자의 계좌에 입금한다. 입금된 돈은 근로자의 선택에 따라 정부나 민간 금 융기관이 운영할 수 있고, 55세가 되면 퇴직 계좌로 이전돼 은퇴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SG Enable’, ‘Enabling Village’ 설립으로
장애인 서비스 시작

  • 특히 육체적, 정신적, 개인적 결핍으로 발생하는 국민 개개인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에는 거의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장애인이 대표적으로 소외되는 대상이었다. 전체 인구(590만 명)의 3%에 불과한 12만 명 정도로 소수인 장애인 인구 때문인지 장애인을 위한 사회서비스는 서구 선진국에 비하면 미흡한 편이었다. 심지어 장애인만을 위한 제도는 오히려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3년 ‘SG Enable’이 설립되면서 장애인 개개인을 위한 사회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SG Enable은 우리나라로 보면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장애인개발원을 합쳐 놓은 기관이라 할 수 있는데, 장애인고용·복지·교육을 통합 지원하는 민관 협력 기관이다. 이 기관 부설 ‘Enabling Village(장애인사회통합지원센터)’에 우리나라 영부인이 방문하여 주목받은 적이 있다. Enabling Village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고 발달장애인직업지원센터 등 각종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Enabling Village(장애인사회통합지원센터)

    Enabling Village(장애인사회통합지원센터)

장애인복지 중장기계획 ‘EM2030’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장애인 사회서비스 관련 싱가포르 특유의 ‘계획주의 국가’의 실력이 드러나고 있다. SG Enable과 사회가족개발부(MSF, Ministry of Social and Family Development)와 함께 국가차원의 장애인 고용, 복지, 교육을 아우르는 중장기계획 ‘EM2030(Enable Masterplan 2030)’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 하에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i'mable Collective’이다. 여기서는 발달장애인 예술가와 제작 커뮤니티를 육성하고, 장애인의 그림, 수공예 상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일자리와 소득을 지원한다. 무엇보다 이 플랫폼의 특징은 싱가포르 정부와 세계적인 투자자 레이 달리오(Ray Dalio)6가 설립한 ‘달리오 필랜트로피스(Dalio Philanthropies)’ 재단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함께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 문화예술 단체와 기관, 기업들이 매우 다양하다.
또한 장애인고용과 관련, 2023년 5월 ‘Enabling Mark’ 시상식을 개최하여 지난 10년간 장애인고용에 앞장서온 57개 기업을 선정하여 Enabling Mark 상을 수여하였다. 그동안 싱가포르는 장애인고용을 민간기업의 자율에 맡겨왔는데 이 포상을 통해 기업의 관심을 촉구하고 그에 걸 맞는 획기적인 정부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 글을 마치며

    다른 어느 국가보다 철저한 ‘계획경제(計劃經濟, Planned Economy)’ 국가, 싱가포르. 국가차원의 거시적인 장애인복지는 남부럽지 않다. 공공임대주택지원,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건강, 교통편의, 교육서비스 등에서는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앞서지 못한 면이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는 장애인등록제도7, 의무고용제도 조차도 없기에 당사자의 서비스 욕구를 정부차원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SG Enable, Enabling Village의 설립으로 장애인 취업알선, 직업훈련, 교육 등 심화한 서비스를 시작하며 ‘역시 싱가포르 추진력’이라고 할 만큼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EM2030 중장기계획’ 의 수립과 실천은 싱가포르 장애인 복지·고용·교육 전반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인민행동당(PAP) 일당 체계와 엘리트 공무원이 단일대오로 일궈온 싱가포르 국가발전 모델을 장애인을 위한 휴먼서비스 개발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미래의 싱가포르 장애인 정책은 세계적인 모델이 되지 않을까. EM2030이 싱가포르 장애인을 위한 사회 서비스 발전의 새로운 모멘텀이길 바란다.

  • ‘i'mable Collective’ 협력 단체

    ‘i'mable Collective’ 협력 단체


6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렌버핏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최대 헤지펀드 투자사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션(Bridgewater Associates)’ 의 창립자

7 싱가포르는 별도의 장애등록제도가 없고, 장애 유형은 ①자폐스펙트럼 장애(ASD), ②지적장애(ID), ③감각장애, ④신체장애로 4개로 나눈다. ASD의 경우 Mild, Moderate Severe 3단계로 구분하고, 신체장애는 뇌성 마비(Cerebral),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근이영양증(Muscular Dystrophy), 이분척추(Spina Bifida), 골형성부전증(Sdteogenesis Imperfect)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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