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컬처
미디어에서
다양하게 다뤄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것은 아무래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일 것이다. 그리고 우영우는 서번트 신드롬 유형에 속한다. 평범한 자폐증은 다뤄지기 어려운 것일까?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영상 콘텐츠 DNA가 농축되어 있다. 1990년대 중반 뒤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라는 명칭이 나왔고 2013년 국제 진단 분류 가운데 하나로 선택되었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경증에서 중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얼핏 엿보였다. 여러 유형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DSM-IV와 ICD-10에서는 광범위성 발달장애 범주에서 자폐성 장애, 아스퍼거 장애, 레트 장애 등을 분류한다. 특히 3세 이전에 보이는 신경 발달장애 가운데 하나인 자폐증은 대인 관계 상호작용과 사회관계에서 미흡함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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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번트 신드롬으로 그려지는 자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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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장 많이 주목시킨 것은 서번트 신드롬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다루는 영상물은 대체로 그들을 비범한 캐릭터로 등장시킨다. 흔한 예는 보통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유형이다. 암산의 천재로 ‘레인맨’에서부터 ‘셜록’, ‘어카운턴트’와 같이 비상한 특정 재능을 갖는 주인공을 꼽을 수 있다. BBC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홈즈는 두뇌는 뛰어나 사건을 천재적으로 해결하는데, 공감 능력이 결핍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영화 ‘어카운턴트’에서 크리스천(벤 애플렉)은 ‘레인맨’의 찰리(더스틴 호프만)보다 진화했다. 그는 수학의 천재로 낮에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회계사(Accountant)로 근무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냉혹한 인간병기가 되어 활동한다. 뛰어난 계산 능력에 육체적 역량까지 초인적이니 가히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 같았다. 다만 뛰어난 무술과 사격은 아버지의 훈련이 작용했기 때문에 선천적인 점만은 아니었다.
한국 영화 '증인'도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인을 등장시켰는데, 여성이면서 고등학생이어서 눈길을 끌었고 그 능력은 매우 뛰어난 청각과 암기 능력이었다. 구체적으로 임지우(김향기)는 자폐성 장애인으로 법정에서 이웃집 살인사건의 증인으로 나서려 하지만, 사회적 편견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을 겪는다. 임지우가 증언 대상자가 되는 이유는 아주 멀리 떨어진 앞집의 살인사건 현장의 목소리를 다 듣고 그것을 완벽하게 외웠기 때문이다.
문화 예술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유형도 있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는 고은성(한효주)의 동생 고은우(연준석)가 발달장애인(자폐성 장애인 3급)인데, 피아노 연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인다. 피아노 연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영화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이 전단지 알바를 하던 조하(이병헌)는 순간 없어진 진태(박정민)가 거리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피아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데 단번에 놀랍게 연주하니 말이다.문화예술만이 아니라 의학 드라마에도 등장한 사례가 있다. 드라마 ‘굿닥터’는 서번트 신드롬의 장애인 캐릭터를 의학 드라마에서 보여줬는데,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물론 미국 드라마로 제작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굿닥터’ 주인공은 투시하는 능력이 있었다. 몸 안의 장기나 증상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다른 의료진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이나 치료를 할 수가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한 곳에 매우 집중하는 자폐성 스펙트럼의 원리를 간과하고, 초인적 능력만 차용을 한다. 이런 유형은 고기능 자폐(HFA)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편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복합적인 발달장애 3급의 고기능 자폐의 문상태(오정세)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매우 뛰어난 암기력을 보여주는 한편 예술적으로 그림에 대한 훌륭한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고기능 자폐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변호사 활동을 할 수가 있다. 역시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기존의 서번트 신드롬 유형에 속한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영우(박은빈)가 보여주는 능력은 난데없는 능력은 아니고 나름대로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다. 물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무조건 천재로 그리지는 않는다. 이미 장애인 영화의 가능성을 대중적으로 보여준 ‘마라톤’에서는 ‘레인맨’을 패러디한 듯싶은 장면이 이미 나오기도 했다. 전직 마라톤선수 출신인 코치는 초원이(조승우)가 천재인가 싶어 암산을 시켜보지만, 반응이 없어 약간 당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번트 신드롬 차원에서 접근하면 장애인의 본질이나 모습을 왜곡할 수 있을뿐더러 그들의 노력이나 과정을 간과할 수 있다. 물론 뛰어난 능력을 등장시킨다고 해도 어떤 주제의식이나 문제의식을 공론화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 비록 서번트 신드롬의 유형이지만, 발달장애인도 법정 증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아젠다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 자폐 스펙트럼 사례였다면 더욱 바람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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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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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담’은 국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의 장애인을 등장시키고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면, 언어발달이나 지적인 역량의 지체는 없지만 독특한 화법을 쓰고, 목소리 크기, 억양, 운율 및 리듬이 색다르다. 여기에 자기의 관심 주제에 대해서는 상대방을 신경 쓰지 않고 장황하게 말이 많으며, 주제를 갑자기 바꾸거나 액면 그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디언 지는 BBC ‘셜록’의 홈즈를 두고 “차갑고 기술적인 전문가이며 살짝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 같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영화 ‘아담’의 주인공 아담은 이런 홈즈같은 서번트 신드롬의 캐릭터와 차별화된다. 아담은 혼자 독립생활을 하며 장난감 회사의 기술자로 일하는데 정서적인 유대감을 나누기 힘들지만 아파트 옆집으로 이사 온 비장애인 여성 베스와 사랑에 빠진다. 평소 천문학에 빠진 아담은 그녀 앞에서 별자리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한다. 자기 관심 분야에 열정적인 아담에게 베스는 호감을 느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천재적인 능력이나 초능력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비장애인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들이 많아지면 현실적인 장애 인식개선은 물론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도 이바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