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국내 최초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
“장애를
즐기고 있습니다”
글. 김엘진
사진.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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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지금 무대 올라온 저 보고 걱정이 많으시죠? ‘어쩌지? 안 웃을 수도 없고…’ 이렇게 고민하느라 힘드실 거 알아요. 제 얘길 듣고 안 웃으면 장애인 차별 같고, 웃으면 장애인 비하 같고, 그쵸?” 그의 첫 마디에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이건 제가 장애인이니까 할 수 있는 개그예요. 그러니까 맘껏 웃으며 즐겨주세요.”
자신의 장애를 소재로 즐거움을 끌어내는 국내 최초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 씨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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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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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코미디언 한기명은 2018년 2월 홍대의 오픈마이크 공연장에 오른 것을 계기로 그해 8월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 초청 돼 공연했으며, 2019년 공연 ‘코미디 얼라이브 쇼’로 널리 알려졌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그는 현재 용산구에 있는 ‘펀타스틱 시어터’에서 매주 월, 화 두 차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다. 개그 소재는 주로 자신의 장애에서 나온다.
“영화 <부산행> 보셨어요? 저 그거 보면서 정말 화가 났어요. 딱 봐도 제가 진짜 잘할 배역이 있는데 왜 그걸 비장애인이 하죠? 제가 하면 훨씬 잘 할 텐데요. 맞아요, 지금 웃으신 분들이 떠올린 그거, 두 글자. 그럼 같이 외쳐볼까요?”
관객들이 “좀비!”라고 외치는 순간 기명 씨가 말했다.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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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코미디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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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7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태권도 학원 차에서 내리던 그를 미처 보지 못한 운전기사가 차를 출발시켰다. 이 사고로 어린 소년은 무려 6개월을 식물인간 상태로 보냈고 지체 장애와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다. 후천적 장애인이지만 그는 장애를 얻기 이전의 기억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조금 더 빨리 현재 상태에 적응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눈을 뜬 후 첫 기억은 <개그콘서트>였다. 아픔 속에서도 같은 병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그들이 보고 있었던 것이 개그콘서트였다. 어린 기명이도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조금 웃었다. “코미디는 절 살려준 은인이에요. 몸이 그런 상태였는데도 덕분에 웃을 수 있었고,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웃음을 주고 싶어졌거든요.”
물론 진짜 코미디언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연극을 보러간 그는 배역을 꼭 자신의 진짜 이야기처럼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력을 좀 쌓으면 개그를 하는 게 더 쉬워질 것 같았거든요. 연극은 개그로 가는 중간 발판 같은 거였죠.”
그는 그렇게 초등학교 때 꿈을 정했다. 그리고 2016년 연극을 시작했다. 창작뮤지컬 ‘멋진 친구들’, ‘바보 이반’, ‘위로받을 햄릿’ 세 편은 비록 일회성 공연이었지만 그에게는 계속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 지난해에는 단편영화 ‘한끼’에도 출연했다.
“개그를 시작하기는 더 어려웠어요. 매년 개그콘서트 오디션을 보기 위해 서류를 넣었는데 서류조차 넣는 대로 다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결국 공연으로 데뷔를 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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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함께 찾아온 친구 ‘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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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장애를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뻔뻔한 장애인 코미디언, ‘뻔장코’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기명 씨는 장애도 뻔뻔하게 즐기기로 했다. ‘토미’는 그가 찾아낸 방식 중 하나다. 그는 사고 이후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는 오른팔을 미워하기보다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로 삼기로 했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름도 영어로 지었다.
“토미가 있어서 저는 홀몸이 아니에요. 혼자 있어도 토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진짜 혼자 있는 기분이 아니에요. 제 몸을 표현하자면 0.5+0.5로 토미의 지분율이 반이나 되는데, 진짜 다행이지 않아요? 얘는 밥을 안 줘도 된다니까요.”
기명 씨의 토미는 꽤 유명하고,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기도 했다. 가수 요조는 그를 만난 후 ‘Tommy’라는 곡을 만들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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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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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 씨는 생계를 위해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요양병원에서 면회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면회를 오는 손님과 환자의 만남을 돕는 업무다. 일을 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개그 소재를 찾아 세상을 유영한다. “재활 치료를 다 받으신 어르신께 ‘그럼 (병실로) 올라가세요’라고 말씀드리면 그분이 ‘그래, 이제 (천국에) 올라갈 때가 됐지’하시는 거예요"라고 말한 기명 씨가 우리의 반응을 살피더니 낄낄 웃었다. “코미디 소재거리를 꾸준히 찾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일을 하지 않고, 공연도 없는 주말에는 봉사 활동을 한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노인복지회관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둘째 주 토요일에는 독거어르신 댁을 방문해 말벗을 해드리거나 치매 예방 게임을 가르쳐드리고, 넷째 주 토요일에는 유기견 보호 단체에 가서 청소 등을 돕는다. 우리와 만난 주에는 영등포 쪽방촌으로 도배 봉사를 간다고 했다.
“제가 식물인간 상태였을 때, 의사선생님들과 부모님, 그리고 주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엄청난 사랑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어요. 중학생 때 누리단으로 봉사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계속 할 수 있는 힘은 무엇보다 봉사를 갔을 때 그분들이 웃어주시는 게 좋기 때문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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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 없는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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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반응은 어떨까. 부모님과 형, 동생이 있다는 그는 아직 가족들에게 자신의 코미디를 보여준 적이 없다.
“부모님은 제가 이런 몸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보시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무대에 선 걸 상상하면 마음이 좀 아프시다고. 아마 제가 어릴 때 사람들에게 놀림 받고 따돌림 당한 적이 많아 더 그러신 지도 모르겠어요.”
잠시 말을 고르던 그는 “그렇지만 저는 진짜로 개그를 좋아하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꿈을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행복한 일이니까 부모님도 언젠가는 함께 행복해지실 거라고믿어요”라고 말한다.
숙연해진 분위기에 그가 다시 깔깔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근데 어릴 때 저에게 사고가 안 났으면 아마 다른 일을 했겠죠. 일단, 4대보험 되는 일로 결정하겠습니다.”
지금은 토미와 함께 삶과 코미디를 즐기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자신을 보며 더 많은 장애인들이 용기를 얻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길 바라고 있다.
“저 역시 현실이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며 성장하겠습니다.”
한기명 씨가 준비하고 있는 다음 단계는 ‘스탠드업 코미디쇼’ 공연이다. 이 공연은 7월 17일부터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광교 갤러리아 10층 매직앤조이 극장에서 볼 수 있다.“코미디는 절 살려준 은인이에요.
몸이 그런 상태였는데도 덕분에 웃을 수 있었고,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웃음을 주고 싶어졌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