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함께

왕관을 내려놓은
바다의 제왕, 고래

글. 김가현

바다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고래는 어느새 멸종위기에 처했다.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래류의 수입·수출·운송·사육이 금지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직도 고래가 잡히고, 동해안 인근에서 고래 고기를 사고파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고래에 대한 이 상반된 모습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 보호의 대상이 된 고래

    • 고래는 가장 큰 포유동물이지만, 위협적이기 보다 친숙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커다란 뇌와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다. 특히 비도(鼻道, 콧소리) 주름의 진동으로 소리를 내고, 몸의 움직임과 꼬리를 치는 행위로 정교한 의사소통도 할 수 있다. 똑똑함과 동시에 영적·신화적 이미지도 있어 미디어 콘텐츠에서 자주 등장한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나오며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실제론 멸종위기 동물로 보기 힘들다.
      물론 처음부터 멸종위기였던 것은 아니다. 고래의 개체 수가 감소하자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을 전면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래 자원의 보전과 관리’에 관한 고시로 고래류 포획이 중단됐다. 2020년 2월 유럽 의회는 고래류 제품이 국제 거래 종식 단계에 들어섰다는 걸 알리며, 수입·수출·운송 금지령을 내렸다. 더 나아가 2023년 12월부터는 관람 등의 목적으로 수족관에서 고래를 사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됐다.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해진 이 법들,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 고래 혼획은 바다의 로또

  • 2024년 2월, 울진 해상에서 길이 5m, 둘레 2.25m 크기의 암컷 밍크고래가 포획됐다. 해당 고래는 7,200만 원에 위판 됐으며, 포획자는 불법으로 잡혀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래를 ‘혼획’ 했기 때문이다. 혼획이란 특정 종류의 어패류를 잡으려고 어업 활동을 한 결과, 대상이 아닌 다른 종이 섞여 잡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혼획 등 적법한 과정을 거쳐 유통되는 고래는 1년에 약 100마리인데, 이에 비해 수요는 3배를 넘는다. 밍크고래가 마리당 수천만 원~1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며 고래는 ‘바다의 로또’로 불리게 됐다.
    올해 4월 바다의 로또를 맞은 사람이 연달아 나타났다. 경북 영덕에서 길이 5m 둘레 2.3m, 경북 포항에서 길이 4.1m 둘레 2m의 밍크고래가 잇달아 혼획됐다. 이뿐일까, 인터넷에 ‘고래 고기’ 이 넉 자를 검색하면 수많은 고래 고기 판매상을 볼 수 있다. 인터넷 거래뿐만 아니라, 동해안 지역에는 고래 고기 전문 식당들이 여전히 운영 중이다.

    포털에서 ‘고래 고기’로 검색한 화면
    •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송창식의 <고래사냥>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동해는 고래의 바다였다. 1970년대 울산을 중심으로 고래잡이를 활발히 했으며, 어선이 고래를 낀 채 귀항하면 마을은 잔치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2023년 12월 시민환경연구소에서 울산, 부산, 경남, 경북, 대구 등 동해안에 인접 거주하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고래와 같은 해양포유류 보호에 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고래 고기를 먹는 식문화를 지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2%만 지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향후 고래 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는가’에 대해 82.9%가 먹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70.2%는 고래 생태나 고래 보호 관련 내용을 알리고 집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고래의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해양 생태계는 안정을 되찾고,
    지구의 지속적인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고래 취식 금지를 위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며,
    우리는 고래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고래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거대한 존재

    • 우리가 고래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멸종위기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먼저 고래는 몸에 탄소를 저장함으로써 탄소를 줄이는 데 도움 된다. 고래의 크기를 생각하면, 다른 동물보다 몇 배는 많은 탄소를 축적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래는 숨을 쉬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몸속에 저장하는데, 한 고래가 평생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약 33톤에 달한다. 고래가 숨만 쉬어도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와 이산화탄소를 줄여주는 것이다. 또한, 고래의 배설물에는 인과 철이 가득하다. 인과 철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돕고, 식물성 플랑크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의 1/3을 흡수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산소의 절반을 배출한다. 이 식물성 플랑크톤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동물성 플랑크톤은 다른 해양 생명체의 먹이가 된다.
      즉, 고래의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해양 생태계는 안정을 되찾고, 지구의 지속적인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고래 취식 금지를 위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며, 우리는 고래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고래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고래를 지키는 행위는 곧,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지키는 것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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