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공감
콘텐츠 공급
과잉의 시대
글. 김엘진
우리는 OTT(Over The Top) 서비스의 시대, 말 그대로 ‘기존의 범위를 넘어선’ 콘텐츠 공급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 지상파 방송만 보던 때보다 비약적으로 볼거리가 늘어났다. 다다익선이라고 했으니, 콘텐츠도 늘어날수록 마냥 좋은 걸까? 우리의 만족도도 그만큼 높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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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것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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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YTN 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OTT 유료 서비스를 결제하고 있다. 공유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OTT 사용자는 훨씬 늘어난다. 우리나라 성인 대다수는 최소 1개 이상의 OTT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MBC, KBS, SBS, EBS 등 지상파 방송에서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더해도 하나의 OTT플랫폼에서 공급하는 콘텐츠 양보다 적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튜브,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애플티비, 티빙 등 수많은 OTT플랫폼에 새로운 콘텐츠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쉬지 않고 영상을 봐도 죽기 전 관심 있는 영상을 모두 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렇게 콘텐츠가 넘쳐나는데, 게다가 자본을 충분히 투자해 완성도가 높은 콘텐츠도, 충분히 자극적인 콘텐츠도 많아졌는데, 막상 ‘볼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 영화를 하나 보러 접속했다가 한참 이것저것 둘러보고 결국 딱히 볼 게 없어서 그냥 나왔다는 경험담에는 아마 OTT 이용자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심지어 보긴 본 것 같은 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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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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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폭이 커질수록 만족도는 줄어든다는 것은 다수의 연구에서 밝혀진 심리현상이다. 수많은 선택지는 합리적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이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동시에 선택은 곧 다른 옵션의 포기를 뜻한다. 이 포기에 대한 인식은 만족감을 감소시킨다.
또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할 경우 우리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내 잘못이 아닌 상황 탓으로 돌리고 싶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더 나은 옵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후회의 가능성 또한 증가한다. 심리학자 베리 슈워츠(Schwartz, Barry)는 책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 Why More Is Less, 2003)」에서 자유의 상징인 선택권이 오히려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좌절시키는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한히 보장된 선택권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더불어 선택의 가치가 희석되어,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는 좌절하며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한 가지 콘텐츠를 선택했지만, 그 선택 역시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 지상파만 있었을 땐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MBC, KBS, SBS 등에서 하는 월화드라마(혹은 수목·주말드라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선택 후에는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내가 고른 드라마가 다소 맘에 들지 않는 경우에도 매몰 비용의 오류, 정당화 편향 등으로 그 콘텐츠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기도 했다.
무한히 보장된 선택권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더불어 선택의 가치가 희석되어,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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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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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는 우리가 그 어떤 콘텐츠도 포기하지 않도록 해줌과 동시에 모든 콘텐츠를 빠르게 포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이미 선택했다는 이유로 맞지 않는 콘텐츠를 소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콘텐츠에 집중할 마음의 여유마저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보자.
지상파에서, 혹은 영화관에서는 이야기의 발단 부분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단숨에 자신을 매혹하지 못하는 콘텐츠를 빠르게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정말로 좋아질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천천히 소화를 시켜야 하는 이야기를 지루하다고 건너뛰기도 하고, 심지어 1.5, 2배속으로 돌려 줄거리만 따라가면서 진짜 이야기의 매력과 정수는 영영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우리의 그러한 변화에 따라 더 빨리 몰입할 수 있도록 더 자극적으로 만든 이야기만 살아남게 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콘텐츠의 양은 많아져도 그 다양성은 점차 줄어들 수 있고 그럼 결국 정말로 ‘볼 게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OTT 서비스는 획기적이고 효율적이고 편리하다. 그러나 이용자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더 좋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다.